정유진의 작업실에서

서울 출생의 조각가 정유진은 뉴욕 할렘에 위치한 작업실,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비가시적인 재난’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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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Jung AND Monica Jae Yeon Moon in Frieze Seoul , Interviews | 24 JUL 25

 

약 1년 전, 정유진 작가는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며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 특유의 거친 매력과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작가에게 “즉흥적인 작업이 가능한 환경”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할렘 거리를 거닐며 녹슨 금속 자재를 수집한다. 그것들로 도시의 움직임과 흔적을 물성을 가진 형태로 발전시키며, “현실의 무게를 가진”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여러 차례 도시 및 자연재해를 멀리서 지켜보기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한 작가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할 때 더 큰 재난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을 평생 작업을 통해 풀어가야 할 과업으로 삼고 있다.

갤러리 상히읗과 함께 프리즈 서울 2025에 참가할 예정인 정유진은 새로운 조각 작품 공개를 앞두고, 미국으로 이주한 경험, 작업에 영향을 준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비가시적인 재난”의 파편들과 추상성에 대한 생각들을 전했다.

문재연(MM) 작업실은 어디에 두고 계신가요? 

정유진(EJ) 작년 9월 뉴욕에 온 이후 맨해튼 할렘에 작업실을 구했습니다. 할렘에 작업실을 갖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별다른 사전 정보도 기대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리에서 접하는 음악이나 그래피티 등이 제 작업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MM 뉴욕으로 이주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EJ 대학원 진학을 위해 뉴욕에 오긴 했지만, 서울에서만 살아오며 환경을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서울은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고 편안하고 익숙한 도시라 장점이 많지만, 작업을 위해서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거대 자본과 재난의 정점에 있는 도시로 여겨지는 뉴욕에 직접 부딪혀 보고 싶기도 했고요.



MM 서울과 뉴욕의 작업 환경은 어떻게 다른가요?



EJ 서울은 매우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입니다. 작업에 필요한 폐자재를 구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죠.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일 작업에 사용된 고장 난 드론도 수많은 드론 업체에 연락해 겨우 공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서울에서는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매우 세부적으로 계획해야만 합니다. 

한편 뉴욕은 도시 곳곳에 다양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어 즉흥적인 작업이 가능한 환경입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폐자재를 작업실로 가져오는 일도 잦고, 친구들이 간혹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위치를 공유해 주기도 합니다. 지금 작업실 바로 옆이 공사장이라 폐자재를 버리는 날이면 수레에 한가득 실어 나르곤 합니다.

Eugene Jung’s studio. Courtesy: the artist
정유진의 작업실. 제공: 작가

MM 프리즈 서울에서 공개할 작품은 무엇인가요? 

EJ 지금까지 작업에서 주로 재난과 재난의 이미지를 다뤄왔고,나아가 ‘비가시적인 재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공사, 넘쳐나는 도시 쓰레기, 늘어나는 노숙인 인구 등의 현상은 결국 시스템의 불균형이나 붕괴된 인프라에서 남기는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신작에서는 도시 시스템의 이러한 흔적과 움직임을 포착하고, 이를 가시화하고 물질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MM  해당 작품에는 녹슨 철판, 기둥 등의 철물, 그리고 드론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재료 선택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EJ 예전부터 서울과 뉴욕 같은 도시에서 건축 자재를 수집해 작품에 사용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 접했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속 붕괴된 도시, 무너져 내린 건축물의 이미지가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죠. 마치 제 세포 깊숙이 새겨진 듯한 감각이었고, 이를 물질화하기 위해 건축 자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제 작업이 현실의 무게를 가지는 것은 저에게 중요합니다. 



드론의 경우, 감시 사회와 같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지칭하고자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도시에서 보여지는 움직임, 시스템의 흐름을 가시화하기 위한 매개체입니다. 예를 들어, 뉴욕에서는 많은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중장비들이 땅을 파헤치고, 드론이나 부유층이 이동수단으로 삼는 헬리콥터들이 도시 상공을 분주히 날아다닙니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어떻게 조각으로 변환할 수 있을지, 또 어떤 구조와 재료가 필요할지에 대해 숙고했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는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공개할 작품에 집약되어 나타날 예정입니다.

일본의 건설 현장에서 포착한 '아키라'. 제공: 작가
일본의 건설 현장에서 포착한 《아키라》. 제공: 작가 

MM 애니메이션, 만화, 영상, 조각 같은 다양한 매체를 어떻게 연결 지어 작업하시나요? 

EJ 20세기 후반 한국 정부는 일본 문화의 수입과 유통을 규제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2000년대 초반, 그 빗장이 풀리면서 일본 문화를 접하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에반게리온》, 《아키라》, 《20세기 소년》, 《몬스터》와 같이 세기말 감성에서 비롯된 애니메이션들을 주로 봤어요. 실제 재난과 만화를 통해 보던 재난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느끼면서도 결국에는 그 이미지에 갇힌채로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을 때, SNS에서 모든 것이 떠내려가거나 멀쩡히 서 있던 건물이 무너지는 수많은 이미지를 보며 ‘진짜 영화 같다’라고 생각하는 제 자신에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친오빠의 안부를 묻는 연락을 주변에서 많이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어요. 동생으로서 오빠를 걱정해야 했지만, 스스로 감각이 많이 무뎌져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Eugene Jung’s studio. Courtesy: the artist
정유진의 작업실. 제공: 작가

MM ‘비가시적인 재난’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EJ 예전에는 땅이 꺼지거나 지진, 폭발 등 현란한 이미지들에 관심이 있었다면, 팬데믹 이후로는 재난이 더 이상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 턱 끝까지 차오르는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뉴욕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현실적인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재난은 주변 환경의 붕괴를 뜻하기도 하지만, 개인이 느끼는 위기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후 위기를 포함해 우리 사회는 정말 많은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할 때 더 큰 재난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MM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EJ 전 주로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요. 사람들을 만나거나,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돌아다니는 식이죠. 작업실에서는 그렇게 도시에서 가져온 재료들을 어떻게 체화할 것인지, 또 제가 이 물질들과 어떻게 관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재료들을 붙이고 자르고, 연결하고 분리하며 실험하는 시간이 제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에요. 때로는 작업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저의 뇌와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Eugene Jung’s studio. Courtesy: the artist
정유진의 작업실. 제공: 작가

MM 앞으로 어떤 작업에 더 몰두하고 싶으신가요? 

EJ 최근 추상화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재난의 의미를 확장하고, 제가 인지하고 있거나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감각들을 어떻게 조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구상 중입니다. 이러한 고민은 사실 모든 작가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의 본질적인 힘은 관객이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물리적 실체가 던지는 질문과 영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시각 예술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해결하지 못할 숙제와도 같습니다.   

Eugene Jung’s studio. Courtesy: the artist
정유진의 작업실. 제공: 작가

추가 정보 

프리즈 서울, 코엑스, 2025년 9월 3일 – 6일.   

현재 할인 티켓은 매진되었으며, 정가 티켓은 지금 바로 구매 가능하다. 프리즈 멤버십 가입을 통해 프리미어 액세스, 멀티데이 입장, 가이드 투어 등 다양한 회원 전용 혜택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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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정유진의 작업실. 제공: 작가

Eugene Jung is an artist based in Seoul and New York.

Monica Jae Yeon Moon is a writer i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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